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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e honest we are with ourselves,
the better our chances for living a satisfying and useful life.

- Nancy McWilliams -

정신분석 리뷰

무력한 조력자 : 남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크레도
2019-08-18 2019-08-18 13:29:49
이 책의 의도는 남을 돕는 조력자의 마음 밑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밝히려는게 아니라, 조력자의 이상적인 초자아 상을 비판적으로 보려는 것이다. 이상적 초자아 상은 도움이 되기보다 해를 끼친다. 효과적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으려면 완벽하게 도울 수 있는 완벽한 조력자 상을 습득할 게 아니라 조력자 자신 및 타인의 약점과 결핍에 대한 공감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조력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타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식의 상투적이고 이상적인 조력자 상은 아이를 완벽히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하는 이상적 부모상만큼이나 어리석다. 이상적인 완벽함이란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해야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면 아이가 자신의 좋은 점은 발달시키고 나쁜 점은 분열시켜 억압하는 것을 배우게 만든다. 나쁜 점을 분열시켜 발달시키지 않은 채 남겨두면 상호작용, 성취감, 친밀함, 성적인 능력, 강렬한 정서 조율 등 중요한 행동방식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불완전함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것과 함께 발달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불완전함이 오히려 생산적일 수 있다. 이상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굳어진 조력자는 거듭되는 실망과 좌절, 실패를 극복하거나 수정할 수 없어 결국 번아웃에 이르게 된다. 겉으로 유능하고 공격적이지 않는 외향을 한 조력자들이 사회서비스 직업에 매우 넖게 포진해 있다.
 
조력직 종사자들의 정신건강은 좋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휴식하는 일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보살피지 않은채 타인에게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타인이 약점을 솔직히 드러내는걸 반기고 무력함을 드러내면 적극적으로 돕지만 자신의 자아가 무력하거나 약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오점을 보지 않으려 한다. 조력자증후군은 다정하고 유능하며 어른스럽고 강해보이는 외면 아래 방치된 굶주린 아이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다. 외롭고 목마르고 배고픈 채 방치된 아이는 '배고파요' '목말라요' '외로워요'라고 부르짖지만 그 모습을 보여선 안되므로 철저하게 분열시켜 억압하고 겉으로는 '난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오로지 타인이 원하는걸 해주고 도와줄 뿐이야' 라고 말한다. 내담자나 환자는 자기 욕구를 맘껏 표현하고 충족할 기회를 찾을 수 있으나 조력자는 자신의 욕구 표현을 자제한다. 그 결과 조력자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심각하게 상호성이 결핍되어 있으며 많은 경우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외롭고 굶주리고 방치된 아이는 어둡고 음침한 지하실에 가둬진 채 중독성향으로 발현되어 상호작용 결핍을 대체한다.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통해 관심받고 싶고 솔직한 감정교류를 통해서 자기애적 욕구를 공급받고 싶은 욕구가 조력자 역할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충족되기 때문에 관심, 인정,확인, 정서적 수유 등의 구강적 욕구의 직접적인 충족은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고 중독이나 타인 의존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배우자의 헌신에 의존해 관계에서 만족을 대체하거나 그마저 없으면 중독성향이 된다. 중독자들이 추구하는, 무욕의 니르바나 상태로 퇴행하고자 하는 열망은 매우 자기파괴적이다.
 
조력자증후군의 가장 흔한 심리장애는 우울증이다. 공격성이 적당한 형태로 외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심하면 자살에 이르게 되는데, 자신의 자아 이상을 만족시킬 수 없어서이다. 높고 경직되고 이상화된 초자아는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견디기 어려운 실패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하므로 조력자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몸부림치며 완고하고 상처받기 쉽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자기 전체가 나쁜 불량품인 것처럼 총체적으로 문제시한다. 긴장되고 경직된 자아 이상의 과도한 요구로 인해 자기애적 상처를 입고 좌절하게 되면 우울과 자살 경향이 심화된다. 조력자증후군의 이면에는 그런 자살판타지가 종종 자리잡고 있다.
 
조력자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희생하여 타인을 돕는 것으로 방어하며 자신을 돕기를 거부한다. 도움을 받는 경우는 주로 조력 능력을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재교육의 형태일 때가 많다. 즉 건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제한하고 손상시키는 방어체계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움을 받거나 재교육을 받는다. 환자나 내담자에게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면서 정작 조력자 자신은 도움 받는 것에 수치심이나 공포를 느낀다. 혹은 자신의 상태를 도움받지 않아도 되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거나 과소평가한다.
 
결국 조력자증후군은 자신의 발달을 희생해 타인을 돕는 경직된 생활방식에 대한 이야기이자 자기애적 장애와 관련된 이슈이다. 어린 시절 자기애적 만족이 거절당하면 부모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일(=초자아와 경직된 동일시)이 아이의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아이는 성장하여 그토록 원하는 것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주지 못하고 이타적인 방식으로 타인을 도우면서 실현하려 한다. 타인을 돕는 기술만 발달시키다보니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미숙하다. 욕망을 표현해도 간접적으로 표출하거나 주변을 비난하는 형태로만 표현한다. 타인의 관심이나 도움을 얻기 위해 중독, 자살, 정신질환 등 자기파괴적인 호소를 하든가, ‘너를 위해 다 했는데 니가 나한테 이럴수 있어?’ 같은 비난을 하는 것이다.
 
조력자증후군은 희생적 활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 없이도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이상화된 조력자 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며, 결국 자신을 해칠 지경에 이를 때까지 타인을 돕는 증후군이다. 이 책은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타인을 돕다가 급기야 조력활동에 중독되는 조력자증후군의 다양한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직업적 책임을 강조하는 각종 교육기관 및 수련기관, 정신분석 훈련의 장 등에서 행해지는 권위적이고 비밀스런 교육과정은 경직된 초자아를 더욱 더 강화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라서, 직업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미 조력자증후군이 예비된 상태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 돕는 조력활동이 적절한 지원체계나 교육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조력자의 자기희생에 기대어 이루어질 때 사회 전체, 조력자 직종 전체의 조력자 상은 극히 이상화될 수밖에 없다.
 
1977년 독일에서 발행된 이 책이 사회적 변화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유는 사회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력자의 심리적인 문제가 가진 핵심에 대해 정확하게 성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떤 이유로 남을 돕는 선택하게 됐는지 반문하고 숙고하는 기회가 되기를, 자신이 그리워했던 것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어야 타인을 위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