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 리뷰
명랑한 은둔자 -- Caroline Knapp
크레도
2021-08-05
2021-08-05 09: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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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여성 캐롤라인 냅이 부지런한 글쓰기와 심리치료, 반려동물, 친구 관계 등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을 극복하는 일인칭 시점의 성찰 글이자, 결핍과 욕구 충족의 어려움 속에서 주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현대여성 전반의 현실을 잘 표현한 글이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그녀의 투쟁기는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에, 거식증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욕구들: 여성은 왜 원하는가>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다.
그녀에겐 강박적이고 통제적인 정리벽이 있다. 정리벽은 내면의 무질서와 혼돈 같았던 부모님 집에 대한 방어행동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에 압도된 나머지 통제력을 갈구하는 행동인데, 과거 거식증을 겪을 때도 그랬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 혼돈으로 느껴질 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려고 했다. 무엇이든 좋으니 무언가를. 이를테면 자신이 섭취하는 칼로리를, 자신의 몸무게를,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은 자신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적세계를 통제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모든 감정적 정신적 문제에는 물리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었다. 저 초콜릿 한 줌이면 내 기분이 나아질 거야, 혹은 저 술 한 잔이면, 저 사람과 관계라면 나아질 거야 하는, 뭔가가-외부로부터 어떤 힘이-내면의 불만을 달래주고, 인생을 바꿔주고, 자긍심을 채워줄 거야 하는 믿음.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둘 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도록 해주는 수단이었다. 거식증은 감정을 굶겨 죽이는 것이었고, 알코올 중독은 술로 감정을 씻어내버리는 방법이었다.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희석된 고통과 직면한 고통은 결코 같지 않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성인이 된 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밑바탕에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고, 내게 맞는 남자나 직업이나 신발, 옷, 헤어스타일 따위가 휙 하고 나타나서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행복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외부에서 내게 주입해주기를 기다렸다. 술이 사실은 그 구속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 디뎌야 할 고통스러운 걸음들을 디디지 않아도 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술을 끊고서야 비로소 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인생을 만족스럽게 만들 방법을 모르고 힘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외부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이른바 구원환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녀는 또한 남자친구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특질들이 자신에게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특질들임을 깨닫고 남자친구가 완벽하지 않다면 당연히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저 한없이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만을 원한다는 건 사실 내적으로 사랑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며, 혼자서도 충분히 귀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해서 그 느낌을 바깥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이해한다. 그결과 그녀는 "나는 진심으로 혼자서 편안하다고 느낄 때, 자신감 있고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고 자신이 귀하다고 느낄 때는 남자친구의 애정을 덜 필요로 하고, 내면의 쓰라린 허기를 덜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다라고 쓰고 있다.
엄마가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할 때 느끼는 딸의 죄책감이 어떤 식으로 여성들의 자기파괴적인 행동들과 연결되는지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자기가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한번도 받지 못한 엄마들은 자신의 실패와 충족되지 못한 야망을 상기시키는 딸의 성취에 대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곤 한다. 딸의 성취에 함께 기뻐해주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혹은 성취에 주목하는 대신 결핍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결국 딸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떨치고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엄마, 타인을 돌보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기쁨을 얻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던 엄마, 딸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아볼 줄 모르는 엄마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분노를 느낀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린다. "죄책감. 규정된 경로에서 멀어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한 걸음이며, 모든 성공 하나하나가 따끔한 모욕일 수 있고 모든 욕구에는 배신의 가능성이 배어 있다. 그것은 미묘하고 절박한 느낌으로, 여자가 식욕에 대한 비교적 실질적인 규칙을 어길 때(다이어트를 그만두거나, 마지막 남은 폭찹 한 조각까지 먹을 때) 경험하는 평범한 종류의 죄책감보다 더 깊고, 상당히 비통하다." "여자는 저기 스스로 그 존재를 발명해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를-혹은 누군가를-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로부터 성취의 기쁨과 힘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딸들은 자라서 자신의 힘과 유능함을 편안하게 느낄 때까지, 더이상 자신의 성취에 대해 사과하지 않게 될 때까지, 성취를(우연한 일이었다고, 행운이나 타이밍이나 상황의 산물이었다고) 해명해 넘기려는 본능에 저항하기까지, 자신의 성취가 사기 같다는 느낌을 떨쳐낼 때까지, 자신의 성취를 진심으로 내면화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그녀는 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엄마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뼛속깊이 내면화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속성들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것을 뒤로 남겨두고 떠나오는 것이, 여성이 스스로의 존재를 발명해내는 첫걸음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